북한의 남침.


정부가 수립된지 2년도 못 된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 남침으로 같은 민족끼리 서로 싸우며 피를 흘리는 또 하나의 비극을 맞이 하게 되었다. 약 33년 동안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과 재산이 없어지고, 우리의 염원인 국토 통일도 이룩하지 못한 채 1953년 7월 27일 국토 분단만을 남기고 휴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유당 정권.


제1공화국의 정권을 잡은 자유당 정권은 휴전 후의 복구 사업과 북한 공산 집단에 대항하는 국가 시책을 수행함에 있어 민주 정치의 원칙을 무시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하였다. 게다가 경제 정책의 미숙으로 말미암아 국민 생활은 빈곤하기 짝이 없엇다. 그들은 경찰권을 동원하여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하면, 장기 집권을 위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헌법을 고치는 등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새 한국의 민주 정치는 독재 정치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한 정.부통령 선서의 부정이 계기가 되어 대구 , 마산 등지에서 일어난 학생데모 군중은 4월 19일을 기하여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총궐기하여, 자유당 정부가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로 말미암아 더이상 지탱하기 어려워진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독재 정권 12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제2공화국과 내각 책임제.


오랫동안의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 정치와, 자유당 정권이 1.19 의거로 무너지자, 허정 내각이 이끄는 과도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1960년 7월 29일에는 새 선거 법에 의하여 제 5대 민의원 및 초대 참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총선거에서 그 동안 제1야당으로서 자유당 정권과 맞섰던 민주당의 승리로 제2공화국이 탄생되었다.


제2공화국과 더불어 탄생한 민주당의 장면 총리는 국무 위원의 조각을 발표하고, 정부를 수립한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내각 책임제를 실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으로 내각 책임제를 바탕으로한 제2공화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Recent posts